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책을 만드는 제조업인 출판산업에서도 친환경이 화두다. 유럽 출판사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에코 퍼블리싱은 꽤 많은 진전을 이루었고, 한국 출판산업에서도 조금씩 인식 변화가 생기고 있다. 종이 원료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다 보니 벌목으로 인한 자연 훼손에 초점을 맞추면 출판산업 전체가 환경 파괴적 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친환경 출판은 ‘책을 읽지 않아야 돼.’라는 이상한 결론(?)이 도출될 염려도 있다. 출판산업은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을까? 어떻게 책을 만들면 친환경 출판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출판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출판산업은 생산 측면에서, 책의 원료인 제지산업과 인쇄·제작에 수반되는 기계·장치산업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종이는 나무가 원료이기 때문에 숲을 벌목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생물 서식지와 종 다양성 파괴 등 생태 환경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목재를 종이로 가공하는 과정과 인쇄·제작 과정에서 에너지, 물, 화학물질 등의 소비량이 높고, 오염물질과 온실가스 발생량도 큰 산업이다. A4용지 한 장을 만드는데 10ℓ 정도의 물이 필요하고, 탄소 2.88g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종이 사용량은 191.4㎏이라고 하는데, 이 종이 사용량만으로 1인당 연간 물 1,914ℓ를 소비하고, 탄소 551g를 배출하는 셈이다. (한국제지연합회, 2017년 기준)
2012년 4월 ‘산업생태저널(Journal of Industrial Ecology)’에 발표된 ‘종이책의 탄소발자국(생산에서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뜻함) 평가’ 논문에 따르면 책 1 권당 2.71㎏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북미에서 생산된 종이를 캐나다에서 인쇄한 경우를 가정한 수치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펄프 생산(54%)과 종이 제작(32%)에서 대부분의 온실가스가 나온다. 인쇄소까지 운송(3%), 인쇄 과정(8%), 유통·공급(2%)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종이는 자연에서 온 원료를 사용하니 ‘환경오염이 덜 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아니다. 우리가 종이를 아껴 쓰고, 재활용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종이 생산과정에 사용하는 에너지와 화학물질,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것이 제지산업과 출판산업이 친환경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출판산업은 어떻게 친환경 출판을 하고 있는지 좀 더 살펴보자.
에코 퍼블리싱은 어떻게?
에코 퍼블리싱은 단순하게 종이만 친환경인 것이 아니라, 출판의 LCA(전 과정 평가)라 친환경인 것을 의미한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겠지만 예를 들자면 책을 만들 때 재생종이와 생분해성 잉크를 사용하고, 판형은 페이퍼백으로 하며 표지는 코팅하지 않고, 띠지나 비닐 포장은 지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들은 상대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식으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출판산업계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환경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시작을 해야 진전도 있는 거니까.
* LCA(Life Cycle Assessment) : 제품 또는 시스템의 모든 과정을 의미. 원료 채취, 가공, 조립, 수송, 사용, 폐기의 모든 과정에 걸쳐 환경 부하량을 정량화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저감, 개선하고자 하는 기법
종이(제지)
친환경 출판에서 종이는 재생지 또는 FSC인증 종이, 그 밖에 비목재용지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재생지는 사용한 종이를 재활용하여 만든 재생펄프로 만든 종이로, 재생펄프가 40% 넘게 들어가야 재생지라고 할 수 있다. 재생지를 사용하면 천연 펄프로만 생산할 때보다 최소 40%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고, 온실가스 배출은 15% 감소한다. 재생지를 사용하여 만든 책에는 ‘재생종이로 만든 책’이라는 인증 표시가 들어가 있다.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인증은 국제산림관리협의회가 부여하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인증으로, 산림(조림지)에서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이 인증기관의 관리 하에 조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FSC라벨이 제품 또는 포장재에 인쇄되어 있어야만 FSC인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단순하게 FSC인증 종이만 썼다고 FSC라벨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FSC라벨을 제품에 인쇄하거나 FSC인증 제품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FSC인증 숲에서 나온 목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후 이를 무역, 가공, 변형, 제조하여 완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임산물을 소유한 공급망의 모든 업체 및 완제품에 라벨을 부착하는 회사 모두 FSC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쇄물의 경우, FSC인증 종이로 FSC인증을 받은 인쇄소에서 제작이 이루어져야만 FSC라벨을 부착할 수가 있다.
최근 FSC인증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져, 시중에 판매하는 우유팩, 택배 상자 등에 인쇄된 FSC라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지 책에 FSC라벨이 붙어 있는 경우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판형
책의 제작 과정에서 종이의 손실량을 줄여, 버려지는 종이의 양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판형은 페이퍼백과 하드커버(양장) 중에 제본 과정이 더 간단한 페이퍼백이 에너지와 재료를 덜 소모할 수 있다. 또한 책의 크기 관점에서 보면, 책이 재단될 때 버려지는 종이의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격판형을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책의 여백을 줄여 종이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잉크
인쇄 잉크에는 기름 성분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구리,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친환경 출판 시에는 이러한 광물성 기름이 들어간 잉크 대신 유해 물질이 적은 재생 가능 자원들로 만들어진 식물성 잉크를 사용하는데, 무용제 잉크, 콩기름 잉크 등이 있다. 콩기름 잉크는 콩기름 함량이 20% 이상인 잉크를 말하는데, 기화되지 않고 그대로 굳는 성질이 있어 해독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또한 생분해 효과도 탁월하고 재생지를 만들 때 종이에 묻은 잉크를 지워내는 탈묵 과정이 기존 잉크보다 훨씬 용이하며, 가격도 일반 잉크와 비슷하다고 한다. 다만, 여전히 소량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어서 아예 이를 뺀 ‘무용제 잉크’를 사용하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글꼴도 중요하다. 네이버가 무료 배포한 글꼴인 ‘나눔 글꼴’에 작은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할 수 있도록 만든 글꼴인 '나눔 글꼴 에코'를 쓰면 잉크를 최대 35%까지 줄일 수 있다. 출력할 때 구멍 안으로 잉크가 번져 빈 곳이 채워지는 방식으로, 1만 장의 문서를 일반 글꼴로 출력할 때 사용되는 양의 잉크로 약 3,500장을 더 출력할 수 있다고 한다.
인쇄
친환경 출판 시에는 유해 물질이 적은 접착제를 사용하고, 박, 형압, 코팅 등 불필요한 후가공 공정은 최소화하여 폐기 후 종이 자원순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코팅을 하게 되면 오염 물질도 배출하고,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책에 띠지나 이중 커버를 하지 않는 것도 에코 퍼블리싱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인쇄소도 위에 언급했던 FSC인증을 받은 인쇄소나, ISO14001(환경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은 인쇄소를 선택하여 친환경 인증을 받은 기계·설비로 제작할 수도 있다.
에코 퍼블리싱의 걸림돌
재생용지 확보나 수용성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재생지는 보통 재생펄프를 40% 이상 사용한 용지를 말하는데 고지(폐지) 율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표기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100% 고지율의 재생종이는 물론, 고지율 40% 이상인 종이를 찾기도 어려워 주로 20% 이상의 ‘우수 재활용(GR)’ 종이를 사용한다. 출판사가 적합한 재생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보인다.
또한, 코팅을 하지 않으면 책의 유통 과정에서 쉽게 훼손될 수 있고, 반품이 들어올 경우 책이 많이 더러워지고 수분을 많이 먹을 경우엔 우그러져 파본이 되는 상황을 염려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종이 물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포용이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책을 살 때, 재생지나 FSC라벨 등을 찾아보며 내가 사려는 책이 친환경적으로 생산되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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